발해를 꿈꾸는 기자 (발꿈기) - 44회 : 영동지역의 3.1운동 ⓶-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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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 도내 곳곳 3.1운동 100주년 기념식

 

  • 제100주년 3.1절이 코앞으로 다가오면서 벌써 많은 기념식 준비가 바쁘게 이뤄지고 있습니다. 강릉에선 3.1 만세운동 기념탑 등에서, 삼척에선 삼척초등학교와 삼척문화예술회관, 양양에선 충렬사와 양양문화복지회관에서 3월 1일 오전 10시 기념식이 열립니다. 영서지역에서도 춘천, 원주, 홍천, 화천에서 기념식이 열립니다. 

 

  • 또, 3월 5일엔 춘천 도청 앞 광장에서, 6일엔 고성 통일전망대에서 ‘독립의 횃불’ 릴레이가 진행됩니다. ‘독립의 횃불’은 3월 1일 서울에서 출정식을 열고 전국 100곳의 만세운동 주요 지점을 돈 뒤 4월 11일 완주하는데 ‘기억하는 100년, 기약하는 100년’이란 주제로 ‘독립의 횃불’을 릴레이 봉송하는 행사입니다. 

 

  • 시민들이 참여하기 좋은 공연도 열립니다. 양양에선 경찰서장에게 화로를 던지며 항의하다 순국하신 함홍기 선생의 추모제와 함께 추모 연극이 열립니다. 3월 1일 오후 2시 손양면사무소에서 열릴 예정입니다. 또, 강릉에선 강릉지역의 만세운동을 재연하는 연극 공연이 강릉 월화거리와 강릉종합경기장 앞에서 열립니다. 지역 극단이 지역민들에게 주는 일종의 서비스인데요. 혹시 내일 공연장 주변에 계시는 분들은 관람하시면 어떨까 싶습니다. 강릉의 지역 극단 ‘해랑’의 김재현 대표와 인터뷰를 나눴습니다.

 

  • 김재현 극단 ‘해랑’ 대표 인터뷰

“월화거리 일대에서 강릉에서 열렸던 3.1 운동 만세 재연 행사를 퍼포먼스를 하게 됐습니다. 지역 예술인들이 모였을 때 예산이 없으면 어떻게 할 수 있을까라는 회의를 많이 했었는데요. 100년에 한 번 있는 행사니까 우리가 언제 또 해보겠느냐 그래서 다 같이 모여서 태극기도 그리면서, 영상도 같이 찍으면서 그런 퍼포먼스라든지 시나리오라든지 모든 기반이 되는 것들은 저희가 자발적으로 좋은 취지를 잡아서 하고 있습니다. 1시에 시작해서 3시에 월화거리로 오는데 3시에 월화교에서 3시 반까지 퍼포먼스가 진행됩니다.”

 

Chapter 2. 고성(간성)의 오늘

 

  • 지난주 이 시간에 말씀드렸다시피 도내 전역에서 만세운동이 펼쳐졌습니다. 하지만 많은 분들이 만세운동이 펼쳐졌다는 사실 자체를 모르고 계십니다. 그러다보니 어디가 이런 만세운동이 펼쳐졌던 역사적 장소인지를 모르는 분들이 많습니다. 또, 영동지역은 상대적으로 만세운동 관련 자료가 굉장히 빈약합니다. 그래서 심지어 정부가 발표한 만세운동 관련 기록에도 빠져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취재했던 내용을 토대로 영동지역의 3.1 만세운동 유적지들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 편의상 가장 북쪽이면서 영동지역에서 가장 먼저 만세운동이 시작된 고성부터 소개하겠습니다. 고성은 1919년 3월 당시엔 간성군이었는데요. 고성은 원산과 가까운 이유로 독립선언서가 일찍 확보돼 영동지역에선 처음으로 3월 17일 간성보통학교에서 전교생이 모여 만세운동을 벌인 뒤 간성시장으로 내려와 확산됩니다. 이 간성보통학교가 지금의 고성교육지원청 자립니다. 그리고 간성시장까지 둘러보시면 어떨까 하는데요. 그때처럼 지금의 간성시장도 2일과 7일에 크게 열리는 5일장입니다. 

 

  • 그런데 광복 이후 5년간 38선 이북에 위치한 곳들은 북한의 통치를 받게 되는데 이후 한국전쟁이 끝난 뒤엔 다시 남한에 속하게 됩니다. 게다가 이승만 정부의 제일의 통치 이념이 ‘반공’이었잖아요. 그런데 당시 다수의 항일운동가들은 1930년대 이후 사회주의 운동을 함께 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지역민들은 엄청난 혼란을 겪어야 했습니다. 좀 더 쉽게 말씀드리면 독립운동을 했다는 이유로 일제의 폭압에 시달리다 해방을 맞았는데 얼마 뒤 전쟁이 나고, 갑자기 세상이 바뀐 거죠. 독립운동을 했다는 사실을 자랑스러워하기보다 자칫 빨갱이로 몰려 집안 전체가 힘든 일을 겪을 수 있기 때문에 알아도 모른 척, 있는 자료는 다 불사르고 없애는 암울한 시대를 겪어야 했던 겁니다. 이런 현대사의 비극은 결국 오늘날 고성지역의 독립운동 역사 자체를 지우는 아픔을 낳았습니다. 이성식 고성군지 편찬위원과 인터뷰를 나눴습니다.

 

  • 이성식 고성군지 편찬위원 인터뷰

“북한 인민공화국 통치를 받았다는 사실 때문에 역사적인 정통성을 부정당한 의식이 지역민들에게 잠재돼 있지 않았을까. 이 지역 자체가 항일운동에 대해서 무지하고, 저조하고, 의식이 낮은 지역은 아니었다는 거죠. 발굴 작업이나 연구 작업이나 이런 것들이 진작 이뤄졌어야 하는데 해방 이후에 5년 동안 북한 통치를 받았다는 것 때문에, 빨갱이라는 낙인을 찍는 작업에 의해서 사람들이 과거에 독립운동을 하다보면 이게 사회주의 운동과 연관된 분들이 많고 사회주의 운동가를 항일 투사로 부각시키면 빨갱이로 바로 타격 받을 수 있는 여지도 충분히 있을 것 같았고. 좀 의식 있는 지식인들은 많이 억압되지 않았을까 그런 느낌을 받는 거죠.”

 

  • 고성군은 영동지역에서 처음으로 만세운동이 벌어졌는데도 지난해 3.1 만세운동이 아니라 항일운동사 전체를 다룬 책이면서도 200쪽이 채 되지 않는 얇은 책을 한 권 냈을 뿐이고 3.1 만세운동 기념탑이나 비도 없습니다. 그런데 올해 고성소방서 인근 공원에 기념탑을 만들기로 했습니다. 박행봉 고성군 자치행정과장에게 들어보겠습니다.

 

  • 박행봉 고성군 자치행정과장 인터뷰

“저희가 예산을 편성했었는데 지난 연도에 국비를 1억 원을 더 확보해서 4억 원 규모의 상징탑을 조성할 계획에 있습니다, 올해. 장소 여건이 여의치 못해서 2018년도에 조성을 못 했습니다. 계속 고심하던 끝에 문화원 이사분들, 원로분들 중지를 모아서 신안 근린공원에 설치할 계획에 있습니다. 이것이 설치되면 군민들의 자긍심이라든가 후손들에 대한 나라 사랑 산 교육장으로 활용될 것 같습니다. 38 이북 지역이다보니 북한 쪽에 이런 자료가 많이 있을 것 같은데 향토자료연구사라든가 이런 분들을 활용해서 앞으로 독립운동사에 대한 자료들을 더 많이 챙겨서 독립운동하신 분들에 대한 넋을 기릴 수 있는 고증 자료를 만들어보도록 그렇게 노력하겠습니다.”

 

Chapter 3. 양양의 오늘

 

  • 당시 가장 많은 희생을 가져왔고, 가장 격렬했으며 도내에서 가장 마지막까지 만세운동이 펼쳐졌던 곳이 양양입니다. 양양에선 현남면을 제외한 모든 곳에서 만세운동이 펼쳐집니다. 특히, 일제 군경의 조준사격으로 9명이 숨져 가장 피해가 컸던 현북면 기사문리에는 만세운동 기념탑이 세워져 있습니다. 저도 이번 취재 과정에 이곳을 두 번 다녀왔는데요. 이곳에 가면 당시 순국하신 9분의 동상이 세워져 있고, 당시 상황이 기록돼 있습니다. 

 

  • 지금의 양양읍내의 만세운동은 유림 대표인 이석범과 유관순 열사 오빠인 유우석 선생의 부인이자 기독교인이었던 조화벽이 제각기 양양으로 독립선언서를 들여와 양쪽이 각각 만세운동을 준비합니다. 하지만 유림과 기독교가 힘을 모으기로 한 뒤 만세운동 전날인 4월 3일 임천리에서 태극기를 만들다가 대거 체포되는데 이곳이 바로 양양의 3.1운동의 시발점이 된 지금의 임천리 ‘이교완 집터’입니다. 

 

  • 그리고 오늘날도 4일과 9일에 열리는 양양 5일장도 핵심 만세운동 유적이고요. 가평리 구장 함홍기 열사가 임천리에서 체포된 22명을 석방하라며 항의하다 경찰서장에게 화로를 던지고 순국한 옛 양양경찰서도 중요한 유적지죠. 제가 함 열사의 손자인 함영덕 님과 현장을 찾아 확인한 결과 지금은 양양군의회 주차장 자리가 바로 옛 양양경찰서 자립니다. 또, 옛 손양면사무소 앞, 옛 서면사무소 터, 물치장터도 중요한 만세운동 유적지입니다. 양양 3.1 만세운동 기념탑이 들어서 있는 현산공원도 둘러보면 좋은 곳입니다.

 

  • 양양군은 3.1 만세운동 100주년을 맞아 지난해부터 아까 소개해드린 조화벽 여사를 재조명하는 여러 가지 의미 있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는데요. 4월쯤 여성 독립운동가 조화벽의 삶과 독립운동 현황을 기록한 책을 발간할 예정입니다. 김완식 양양문화원 향토사연구위원과 인터뷰를 나눴습니다.

 

  • 김완식 양양문화원 향토사연구위원 인터뷰

“양양 만세운동을 이 책 한 권으로 볼 수 있는 필독서가 되는 만세운동사를 한번 만들어보자. 이래서 6명의 연구원들이 매일 모여서 3.1 운동에 관한 자료 수집, 사진 이런 걸 수집해서 양양군에서 올해 4월 4일 양양 장날에 만세운동을 재현할 때 저희는 준비했던 책자를 군민들한테 배포하려고 합니다, 무료로. 독립선언문이 유입되는 경로가 단초가 됐는데 한 갈래는 유림의 이석범 선생이었고, 또 한 갈래는 조화벽 성도였는데 조화벽 성도는 독립선언서를 몰래 가지고 원산을 거쳐서 배로 대포항으로 들어오는데 버선목에 몰래 숨겨왔다는 거예요. 개성 호수돈학교로 발령이 나서 근무 중에 (유관순 열사의 오빠인) 유우석 선생과 결혼을 하게 돼요.”

 

Chapter 4. 강릉의 오늘

 

  • 강릉 경포호수 부근엔 3.1 만세운동 기념탑이 있습니다. 이곳엔 기념탑과 3.1 독립선언서 전문, 그리고 강릉의 4월 2일과 4일 만세운동으로 일제로부터 처벌을 받은 열 분의 흉상이 세워져 있습니다. 이 기념탑은 정면에서 보면 그 담긴 뜻은 다 알 수 없습니다. 하늘에서 봐야 하는데요. 탑을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태극기 모양으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그런데 많은 분들이 이곳을 그냥 주차장으로만 여기고 심지어 기념탑의 태극 문양 가운데 건곤감리 네 괘에 걸터앉아 담배를 피우고, 침을 뱉는 모습도 가끔 볼 수 있습니다. 1919년 4월 4일 청년회와 농민들이 중심이 됐던 만세운동을 주도한 혐의로 일제로부터 태형에 처해졌고, 3.1 만세운동 기념탑에 흉상이 세워져 있는 최영방 선생의 아들 최갑집 님과 인터뷰를 나눴습니다.

 

  • 최갑집 / 故최영방 선생 아들

“어려움이야 많았죠. 많지만 그렇다고 어디 가서 얘기도 못하고. 그때 먹을 게 없으면 부잣집 가서 쌀을 좀 내다가 먹고 또 가을에 농사지어서 갚고. 지금 젊은 세대들은 그래요. 젊은 세대들은 몰라요. 독립운동이 어떻다는 것을 아직 잘 모르고 있고. 관련 책자가 많이 나와야 한다. 책이 나와서 사방에 책이 비치가 됐을 적에 젊은 사람들이 이해하지만 지금은 젊은 사람들은 몰라요. 오면 여기서 앉아서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도 많아요. 여기 앉아서. ‘이봐요. 여긴 놀이터가 아니고. 이런 중한 데서 앉아서 담배 피우면 어떡하냐?’ 제가 이렇게 얘기도 하고 그럽니다만 젊은 사람들은 몰라요. 모릅니다.”

 

  • 3.1 만세운동 기념탑이 20년 전인 1999년 건립됐고, ‘강릉지방 항일독립운동사’라는 책이 2010년에 만들어졌습니다. 강릉의 3.1 만세운동의 핵심 역할을 한 곳이 당시 장터였던 지금이 택시부광장, 그리고 당시 독립선언서와 태극기를 찍어낸 장소인 당시 감리교회 자리가 지금의 한국은행 맞은 편 일번지 상가입니다.

 

Chapter 5. 삼척의 오늘

 

  • 삼척은 영동지역에선 가장 늦은 4월 15일에서야 첫 만세운동이 당시 삼척보통학교, 지금의 삼척초등학교에서 벌어집니다. 제가 삼척초등학교를 가보니 기념비가 세워져 있고, 당시 만세운동 현황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기념비가 세워진 건 1990년인데요. 한 가지 아쉬운 게 한자가 많이 들어가 정작 삼척초등학교 학생들은 잘 이해하기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고요. 또 하나는 학교 안쪽 외진 곳에 있어 삼척시민들은 이런 자랑스러운 역사를 잘 모르고, 보기 어려운 구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게다가 이 삼척보통학교 만세운동에 관한 책자 하나 나온 게 없습니다. 삼척 4.15 만세운동 기념사업회가 1990년 생기면서 기념비를 세운 거라는데요. 내년에 창립 30주년을 맞아 만세운동 관련 책자를 온라인과 오프라인으로 만들어내서 삼척시민들은 물론 지역 외의 분들도 알 수 있도록 하면 어떻겠냐고 취재하면서 말씀드렸더니 그렇게 하겠노라고 심영곤 기념사업회장이 약속했습니다.  

 

Chapter 6. 정선의 오늘

 

  • 지난주에 정선에서도 3.1 만세운동이 있었다는 사실을 말씀드렸었는데요. 2월 20일 국사편찬위원회에서 전국의 3.1 만세운동 관련 데이터를 공개했는데 여기에도 정선의 만세운동 내역이 없더라고요. 공식적으로 만세운동 자료가 없으니 유적지도 없는 것으로 돼 있습니다. 지난 2010년 국가보훈처와 독립기념관이 공동 발간한 ‘국내 항일독립운동 사적지 조사보고서’ 제6권이 ‘강원도 독립운동사적지’인데요. 여기에도 정선군에 대한 내용은 없습니다. 그만큼 정선의 만세운동에 대한 자료를 제대로 내고 기념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해보였습니다. 2012년에 김영윤 정선 향토사연구위원이 관련 논문을 냈고, 정선문화원의 단행본에 실렸는데요. 앞으로 정선지역에서 좀 더 관심을 갖고 관련 사료 연구와 책자 등의 발간이 이뤄지면 좋겠습니다.

 

  • 김영윤 위원을 통해 알게 된 사실이 정선 성당이 당시 만세운동의 사전 계획을 하고, 독립선언서와 태극기 제작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겁니다. 그래서 그런지 정선 성당을 가보니 역사적인 명소로 보이더라고요. 시장과 가까운 곳에 있으니 한번쯤 가보면 어떨까 싶습니다.

 

Chapter 7. 강원도의 독립유공자

 

  • 광복 이후 38선 이북 지역은 북한이, 이남 지역은 남한이 각각 통치를 하게 되고 곧이어 터진 한국전쟁으로 한반도는 극도의 혼란에 빠지게 되죠. ‘반공’을 국시로 내건 이승만 정부 내내 정치적인 혼란과 경제적인 어려움이 극에 달했습니다. 누가 독립유공자고 친일파인지 가려내기가 어려워진데다 영동지역의 경우 특히, 잘못하면 ‘빨갱이’로 몰려 집안이 몰락하고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상황으로 전개되면서 독립운동은 자랑이 아닌 숨겨야 할 비밀이 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정부의 독립유공자 인정과 서훈 기준이 일제로부터 받은 처벌과 옥살이에 초점이 맞춰지면서 함흥에 법원과 형무소가 있던 영동지역은 그마저도 증거를 대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렇다보니 강릉 3.1만세운동 기념탑에 흉상이 세워져 있는 열 분의 독립운동가도 뒤늦게 당시 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에 실린 신문기사가 세상에 알려지며 자격을 갖추게 됐고, 그보다 훨씬 많은 분들과 그 가족들은 독립유공자로 제대로 인정받거나 대우받지 못한 채 억울한 삶을 살았거나 살아가고 있습니다. 제가 지난해 11월 발꿈기 ‘순국선열’ 편에서 자세히 말씀드렸었지만 우리나라가 가야 할 길이 참 멀다는 생각을 합니다. 

 

  • 그렇다면 우리나라에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아 훈장이나 포장을 받은 분은 모두 몇 분이나 될까요? 국가보훈처에서 관련 자료를 받았는데요. 2019년 2월 현재 기준 우리나라의 독립유공 수훈자 수는 15,179명입니다. 지난해 355명, 2017년 269명, 2016년 312명이 추가됐습니다. 이 가운데 1/3 가량인 5,070명이 3.1운동 관련 독립운동가입니다. 훈장의 격에 따라 대한민국장, 대통령장, 독립장, 애국장, 애족장, 건국포장, 대통령표창 이렇게 나뉘는데요. 애족장이 전체의 37.4%, 애국장이 28.4%, 대통령표창이 19.6%입니다. 국가보훈처는 계속 독립유공자를 찾는 일을 하고 있는데요. 강릉에 있는 국가보훈처 강원동부지청이나 보훈회관 등에 가보면 ‘독립유공자를 찾습니다’ 하는 포스터가 붙어 있잖아요. 

 

  • 그럼 강원도엔 독립유공자가 몇 분 있을까요? 강원도엔 전체의 4.1%인 623분 있습니다. 지난해 9명이 추가됐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독립유공자가 가장 많은 곳은 경상도로 3,374명이고 평안도가 2,126명, 전라도가 2,080명으로 세 번째입니다. 이 세 곳의 독립유공자 수가 전체의 절반을 차지할 정도입니다. 시.군별로는 경북 안동이 300여 명으로 압도적으로 많고 평안도 의주가 170여 명, 충남 홍성이 160여 명입니다. 도내에선 양양이 50여 명으로 가장 많고, 홍천, 철원 순입니다. 

 

  • 그런데 독립유공자를 찾는 일도 진행이 되고 있지만 공적을 찾고 인정받아 정부가 훈장이나 포장 수여자로 확정했는데 후손이 나타나지 않아 이를 전달하지 못하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이들 독립유공자의 후손을 찾는 일도 진행되고 있습니다. 훈장은 받았지만 후손을 못 찾은 유공자가 몇 명인지 아세요? 무려 5,713명에 달합니다. 독립운동 당시 본적지를 토대로 지역별로 보면 강원도에는 모두 259명의 독립운동가가 있습니다. 

 

  • 영동지역만을 살펴보면요. 당시 간성의 경우 의병활동을 하다 일본군 수비대에 피살된 최용구 선생 한 명, 고성이 5명, 강릉이 1908년 순국한 김해구 의병장을 비롯해 9명, 삼척이 1907년 순국한 김성산 의병장 등 세 명, 양양은 1919년 4월 9일 현북면 만세시위에 참여했다 붙잡혀 징역 6월형을 선고받았던 한윤성 선생 등 10명입니다. 정선은 1921년 한국 독립에 관함 비밀문서를 강릉 등지로 배포하다 붙잡혀 징역 2년을 선고받았던 김정국 선생 등 7명입니다. 

 

  • 국가보훈처는 독립유공자 발굴과 독립유공자 후손 찾기 사업을 지속적으로 진행하고 있는데요. 국가보훈처 이영자 사무관과 얘기나눠보겠습니다.

 

  • 이영자 국가보훈처 사무관 인터뷰

“국가보훈처에서는 일제강점기 조국의 독립을 위해 희생하는 분들을 독립정신을 기억하고 계승하기 위해서 독립유공자를 발굴, 포상하고 있습니다. 현재까지 독립유공자는 15,180명이며 후손이 확인되지 않아서 훈장을 전수하지 못한 분은 5,700여 명입니다. 그래서 독립유공자 제적원부 현지 조사, 국내외 홍보 등을 통해서 후손 찾기 사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독립유공자 후손 찾기는 독립유공자 후손을 한 분이라도 더 찾아 예우 및 지원을 함으로써 나라를 위해 희생, 공헌하신 분들게 국가의 책임을 다하는데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Chapter 8. 옛 신문에서 찾은 영동지방의 만세운동

 

  • 3.1 만세운동 당시 관련 기록이 부족해 많은 독립유공자들이  제대로 된 대우를 받지 못한 채 살고 있는 것은 정말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당시 조선총독부 기관지였던 ‘매일신보’에 도내 곳곳의 ‘만세운동’ 관련 기사와 관련자들에 대한 판결 기사가 실려 있어서 강릉을 비롯해 상당수 독립유공자들이 인정받을 수 있었습니다.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의 앞잡이 역할을 했던 신문의 도움을 받아 독립유공자로 인정받게 되는 상황은 생각할수록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 당시 매일신보 기사를 몇 가지 살펴보겠습니다. 1919년 4월 14일자엔 ‘강릉소요자판결’이란 제목으로 ‘본월 2일 시장을 이용한 국기를 배포하고 만세를 부른 주모자 여섯 사람은 예심을 마치고 공판에 부처서 선고를 받았는데 최선재, 조대현은 징역 열 달에, 최선근은 동 여섯 달에, 최돈옥, 김진숙은 동 넉 달에 처하였더라.’ 이런 기사가 실렸고요. 4월 18일자엔 ‘각지 소요’란 제목으로 ‘본월 4일 강릉면 각동 농군이 남대천 관수개천을 치고 도라가는 길에 만세를 부르고 소요한 주모자 육인은 십일에 판결 언도를 마친 바 최진규, 최이집은 징역 4개월, 또, 최영방, 박장실, 김봉공은 태(형) 구십으로 언도하였으며 유옥일은 기소유예가 되었더라’ 이런 기사가 있습니다. 

 

  • 또, 만세운동이 가장 크게 벌어졌던 양양 관련 기사도 많은데요. 4월 13일자엔 ‘양양 시장에 대소동’이란 제목으로 ‘본월 4일은 양양읍시장일인데 오후 1시경부터 군중 수천인이 소요하던 중 경관과 수비병은 진력하야 제지하엿스나 끝나지 않고 불온한 상태가 있는고로 부득이 발포하야 사상자 삼명이요, 중경상자가 다수인데 주모자 수십인을 체포하엿더라’ 이런 기사가 있습니다. 

 

  • 5월 3일자엔 ‘간성의 소요자 징역 열 달에 처함’이란 제목으로 ‘강원도 간성군 신북면 계월리 김동원은 지나간 삼월 중 소요때에 면서기 박규용과 공모하고 면사무소의 등사판을 사용하야 독립선언서 같은 선동서류를 등사하야 근처 게시판에 게시하고 또는 각 민가에 배부한 일로 두 사람이 모두 체포되야 원산지청에서 심리 중이더바 김동원은 징역 열 달의 선고를 받았다더라’ 이런 기사가 있습니다.

 

  • 이밖에도 여러 기사가 많이 실려 있는데요. 옛 신문 기사 소개는 이 정도로 마치겠습니다. 참고로 당시 양대 민족지 동아일보와 조선일보는 모두 1920년에 창간해서 3.1운동 관련 기사는 없습니다.

 

Chapter 9. 기록, 수집, 정리 서둘러야

 

  • 저는 이번 취재를 진행하면서 당연히 가장 먼저 관련 자료를 찾고 모으고 읽었는데요. 많진 않지만 어쨌든 지역별로 관련 자료가 한 권씩은 있더라고요. 강릉은 2010년 발간한 ‘강릉지방 항일독립운동사’, 양양은 그 전에 몇 권 있었지만 2016년 발간한 ‘양양의 얼, 양양지역 항일독립운동사’가 가장 최근에 낸 책이고, 올해는 더 집대성한 책을 4월 4일 만세운동 100년 기념으로 발간, 배포할 계획입니다. 고성은 지난해 발간한 ‘고성의 독립운동사’가 있습니다. 해당 지역에 사시는 분들은 지역 도서관이나 문화원에 해당 책이 있으니 한 번쯤 찾아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정선의 경우는 2012년 나온 논문이 단행본에 실려 있는데 정선문화원에 이 책이 있고요. 앞으로 지역의 독립운동사를 정리한 책이 나오길 기대합니다. 삼척의 경우엔 4.15 만세운동 기념사업회에서 조만간 관련 자료를 내겠다고 말씀하셨으니 1~2년 안에 관련 책이 나오리라 기대합니다.

 

  • 이처럼 3.1 만세운동이 도내 전역으로 들불처럼 번져갔는데도 관련 자료가 부족한 것은 광복 직후 남북 분단 상황이 만들어진 게 큽니다. 특히 이 같은 이념 대립은 결국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을 찾아 제대로 대우하지 못하는 상황을 빚어냈습니다. 따라서 그 지역의 독립운동 역사를 정확히 정리하는 일은 너무나 중요합니다. 이와 관련해 순국선열유족회의 김시명 회장과 인터뷰를 나눴습니다.

 

  • 김시명 순국선열유족회장 인터뷰

“강원도 지역은 교통상으로 철도를 중심으로 해서 서울을 오거나 원산지역 이쪽으로 많이 다녔기 때문에 특히 강원도의 북쪽 지역은 상당 부분 북한의 치하에 있었던 지역이기 때문에 현재 남한 지역에 기록들이 많이 남아 있지 않은 경향들이 상당히 있을 겁니다. 그래서 통일이 되면 당연히 묻혀 있는 기록들이 나타나겠지만 현재 그것을 찾아보는 일은 그 당시에 있었던 분들의 증언 그 부분을 찾거나 다른 지역의 독립운동, 3.1운동하고 연계된 일을 찾아서 그쪽의 3.1운동을 증명해나가는 그런 일을 해나가야 하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Chapter 10. 순국선열과 애국지사, 광복회

 

  • 순국선열과 애국지사의 뜻의 차이는 여러 번 말씀드렸습니다. 광복을 살아서 맞으신 독립운동가는 애국지사로 지금의 광복회의 주축을 이루고 있고, 안중근 의사나 유관순 열사, 김좌진 장군처럼 일제강점기에 돌아가신 독립유공자는 순국선열이며 현재 유족들에 의해 몇몇 단체가 만들어져 활동하고 있지만 법정단체로는 인정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 우리나라 독립유공자 단체는 법적으로는 유일하게 ‘광복회’만 인정받고 있습니다. 강원도엔 춘천에 광복회 강원도지부가 있고 회원은 150여 명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영동지역에는 원래 광복회 강원도지부 영동지부가 있었는데 올해 1월 1일자로 영동북부지회와 남부지회로 나뉘었습니다. 영동북부지회는 강릉, 양양, 속초, 고성이 대상이고, 남부지회는 동해, 삼척, 태백, 정선, 평창, 영월이 대상입니다. 강원동부보훈지청의 관할에 따라 나눈 거라고 하더라고요. 영동북부지회는 강릉 보훈회관 2층에 사무실이 따로 있습니다. 남부지회는 사무실이 따로 없고 삼척 보훈회관에서 다른 단체들과 함께 사무실을 나눠 쓰고 있습니다.

 

  • 최근중 영동북부지회장이 올해 86세, 이상 남부지회장이 87세입니다. 3.1 만세운동에 참여했던 독립유공자 본인은 생존자가 없다고 하고, 2세대도 대부분 80~90대로 연로한 상황입니다. 양양군 만세운동의 기폭제가 됐던 함홍기 선생의 손자 함영덕 님이 올해로 80살입니다. 그러니까 이젠 3세대도 70~80대 노인들이란 거죠. 그만큼 관련 자료를 모으고, 증언을 듣고, 기록해두고, 정리하는 일을 빨리 서둘러야 한다는 겁니다. 광복회에서 이런 일을 주도적으로 해야 하는 분들이 90을 앞둔 노인이어서 이분들이 기력이 있을 때 지역에서, 주변에서 도와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상 광복회 강원영동남부지회장과 말씀을 나눴습니다.

 

  • 이상 광복회 강원영동남부지회장 인터뷰
  • 3.1운동 때 피해 보셨던 분들의 후손들이 동해, 삼척, 태백에 몇 분이나 생존해 계세요?

“하나도 없죠. 다 돌아가셨죠. 지금 독립운동가 살아 있는 건 강릉에 한 사람이 3년 전에 돌아가셨죠. 독립유공자 당신이.”

  • 그럼 그 후손들은요?

“후손들은 많죠.”

  • 동해, 삼척, 태백에는 몇 분이나 계세요?

“약 60명 된다고 얘기했잖아요. 수권자는 16명이 이제 보상을 받는 거고. 다달이.” 

  • 그 분들 기억이 잊히기 전에 빨리빨리 자료를 챙겨놔야 되겠네요?

“네, 네, 해야죠.”

 

Chapter 11. 남북 관계 개선에 대한 기대

 

  • 지난해 이후 남북 관계와 북미 관계 개선이 한반도 최고의 이슈가 되고 있는데요. 남북 관계가 좋아지게 되면 기대할 수 있는 일들 가운데 당장은 금강산 관광이나 개성공단 같은 경제 문제가 이슈가 되겠지만 시급히 함께 해야 할 일 가운데 하나가 일제강점기 시절에 대한 청산이 아닐까 싶습니다. 제가 말씀드리는 청산이란 단죄 같은 성질이라기보다는 사전적 의미 그대로 ‘과거의 부정적인 요소를 깨끗이 씻어버리는 행위’를 뜻하는 겁니다.

 

  • 이번 취재 과정에 만난 어떤 분이 이런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한국전쟁 이후 친일파들이 득세한 남한보다 항일 독립운동가들을 우대했던 북한에 어쩌면 항일운동 자료가 더 많이 남아 있을지도 모르겠다고요.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지만 어쨌든 남북 관계가 개선돼 남북한이 서로 보유하고 있는 자료를 파악하고 공유할 수 있게 되면 남북 강원도의 일제강점기 항일 독립운동사는 재평가 받을 가능성이 높아질 테고 특히, 영동지역의 독립유공자 수는 크게 늘 거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평화 무드가 무르익는 지금부터 서둘러 남북 당국이 이런 문제들을 논의하고, 준비하면 좋겠습니다.

 

Chapter 12. 자랑스러운 영동지역의 항일 역사

 

  • 지난주부터 정말 긴 시간 동안 영동지방을 중심으로 강원도의 3.1 만세운동과 오늘을 사는 우리가 기억하고 찾아볼 가치가 있는 주요 유적지, 그리고 강원도내 독립유공자 현황과 항일운동의 공적이 증명돼 훈장을 받았지만 아직도 후손을 찾지 못하고 있는 독립유공자들까지 자세히 살펴봤습니다.

 

  • 제게도 정말 많은 공부가 된 시간이었습니다만 지역민들에게도 우리 지역의 항일운동이 얼마나 치열하게 전개됐는지, 얼마나 자랑스러운 역사인지 되새기는 시간이 됐기를 바랍니다. 지난해 11월 발꿈기 ‘순국선열’ 편에서 지역 언론에서는 잘 다루지 않는 주제를 다뤘었는데 3.1 운동 100주년인 올해엔 지난주와 오늘 방송해드린 ‘영동지역의 3.1 운동’뿐 아니라 기회가 될 때마다 발꿈기에서 우리 근.현대사를 되돌아보는 시간을 마련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 지금까지 발꿈기 마흔네 번째 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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